[오피니언] 역지사지(歷知思志) (중앙일보 / 2022-04-13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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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성운 기자

1945년 10월 이승만이 귀국하자 좌·우익이 모두 손을 내밀었다. 박헌영의 조선공산당, 여운형의 조선인민당, 안재홍의 국민당, 김성수의 한국민주당 등이 민족통일전선을 모색하면서 이승만을 최고 지도자로 추대하기로 했다. 허헌 등 좌익 인사들도 이승만에게 인민공화국 주석에 취임해 달라고 요청했다. 이승만은 광복 직후 서울에서 1개월에 걸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후보 선호도 1위였다.

국내 정치기반이 없었던 이승만은 어떻게 이런 정치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을까. 이택선 충남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연구원은 『우남 이승만 평전-카리스마의 탄생』에서 “미국 라디오 방송을 적극 활용해 권위를 획득한 결과”라고 분석했다. 이승만은 1942년 6~7월 ‘미국의 소리(Voice of Korea)’에서 한국어와 영어로 광복군의 활동을 알리는 육성 방송을 했는데, 그것이 국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는 것이다.

유투브 0412. 일러스트 = 김지윤 기자 kim.jeeyoon@joongang.co.kr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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